[IBS CSC] 국내연구진, 해파리 `발광원리` 찾아냈다
쌀쌀해진 날씨, 옷장에 넣어뒀던 두꺼운 니트를 꺼내 입을 때 종종 불꽃이 튀며 정전기가 발생한다. 겨울철 불청객인 정전기가 '형광단백질'을 빛나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전기 덕분에 우리는 치매,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은 물론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모든 물질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양(+)전하를 띠고 있는 양성자와 음(-)전하를 띠고 있는 전자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양성자와 전자의 수는 같기 때문에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중성인 두 물체가 마찰을 일으켰을 때 전자가 이동하면서 전기가 발생한다. 이 전자가 전선을 타고 흐르면 전류가 되고, 흐르지 못하고 머물면 정전기가 된다.
정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지만, 의외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의료·바이오 분야에서 사용되는 형광단백질이 정전기와 같은 원리인 '전기장 효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61년 시모무라 오사무 전 미국 우즈홀해양생물학연구소 박사는 해파리가 빛을 내는 이유를 관찰하던 중 자외선이나 청색빛이 닿으면 녹색빛을 만들어내는 형광단백질을 발견했다.
형광단백질은 해파리뿐만 아니라 대장균 등 다양한 생물에서도 작동한다. 이 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복제한 뒤 생명체에 넣고 빛을 주면, 유전자가 발현되는 부분이 밝게 빛난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살아 있는 세포나 생체 내에서 세포 분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형광단백질의 '양자효율'은 80%에 달할 정도로 높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형광단백질이 어떠한 이유로 빛을 내는지에 대해 명확한 원인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영민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그룹리더(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형광단백질의 높은 양자효율의 비밀이 전기장 효과(정전기)에 있음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 화학회지' 9월 23일자에 게재됐다. 형광단백질은 세포 속에서 '오크통'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과학자들은 오크통 모양의 구조 안에 분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잡으면서 빛을 낸다고 생각했다.
이영민 그룹리더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오크통 모양 구조 안에 갇힌 분자에 형광단백질이 주는 정전기와 같은 전기장 효과가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리적인 접촉이 아닌, 전기장이 형광단백질의 양자효율을 80%까지 끌어올린 원인이었던 셈이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스마트폰, 노트북컴퓨터, 디스플레이 TV 등은 모두 전기를 이용해 빛을 발생시켜 우리가 볼 수 있는 상을 제공한다.
전기를 줬는데 빛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열이 발생하고 배터리도 빨리 소모된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재료도 양자효율 2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민 그룹리더는 "형광단백질이 갖고 있는 80%의 양자효율을 모방하게 되면 적은 에너지로도 많은 빛을 낼 수 있는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며 "산업 분야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용어 설명>
▷ 양자효율 : 빛 알갱이인 광자를 흡수한 뒤 다시 빛을 내는 비율을 말한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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